걱정도, 가방 속 반창고와 연고도 늘어간다. 덥게 찌든 여름이 왔다. 길모퉁이를 돌아 몇 걸음 안 돼서 휘청이는 키티 상을 잡아끌고 말했다. 되도록 그만하는 게 어때.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잡은 손목이 햇빛에 눅눅해져 금방이라도 납작, 찌그러질 것 같았다. 결국 먼저 물러나야 했다. 내게 약한 존재란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았다. 키티 상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치마를 털고 목에 걸려 있던 카메라를 들어 멍청히 서 있는 나를 찍었다. 내 시선은 손가락 끝에 붙어 너덜거리는 반창고로 향했다. 이미 끈적임이 사라진 반창고를 꾹꾹 눌러 붙여주었다. 여전히 키티 상은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참 느리고 더러운 날도 있지. 어제도 햇빛이 따가운 건 매한가지였는데 왜 오늘따라 거슬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헐떡이는 숨을 혀 아래 숨겼다. 귀찮고, 이길 수 없고, 아무리 닦아도 닦이지 않는 옅은 자국이 단숨에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라지지 않는 열기를 키티 상도 느꼈으면 좋겠다. 이른 내 여름 안에서 밤새 두통을 앓다가··· 홀연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키티 상은 너무 당연히 사랑할 마음을 먹었다. 내가 괴로운 건 사랑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모르기 때문인데. 사랑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사랑했는데 결국 미움이었어
모든 사랑을 원한다는 건 모든 미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것과 같아
미워한다면 당연히 동시에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
그만 미워하고 싶다면 우선 그만 사랑하자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어?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미운 게 아니야
어쩌면 우리는 평생 미워하고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닐까
미워하고 있으면 똑같이 그만큼 사랑하게 돼
사랑은 미움과 쌍둥이 같아
짧게 미워하자 그리고 오래토록 사랑할게
미움에 붙들려 있어도 결국 사랑과 같은 소리가 나
잊지 마 난 평생 당신을 미워하려고 애썼고 그건 곧 평생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의미해

세상 살기란 이토록 암흑이고 두려워야 했던가.

코즈키가 일찍이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였다. 나무랄 데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누구처럼 평범하게 히어로를 꿈꾸고 평범하게 좌절하고 포기했다. 나이 삼십에 가까워졌을 무렵엔 멋들어진 직책을 달고 남을 부렸다. 집에 돌아오면 텅 빈 거실에 아무렇게나 누워 하루를 반추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할 텐가. 코즈키가 도달한 답은 가정의 결실이었다. 거기까지 가는 데 정말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비비는 조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굶어 죽지 않겠지만 좋은 것은 자매에게 양보해야 하고 거지 꼴은 아니겠지만 새 옷은 입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살다 젊음과 오기만 들고 도쿄로 온 것이었다. 겨우 원형 목재 테이블 두 개 들어가도 꽉 찰 사이즈의 찻집이 첫 시작이었다. 화려한 도쿄에 향토 냄새가 나는 찻집이라 인기를 끌었다. 처음엔 줄을 서야 할 정도였는데 이젠 단골 몇 명으로 돌아가는 추세였다. 코즈키도 그 단골 중 한 명이었다.

"눈이 많이 내립니다."

"그래요, 가는 길 힘들겠어요."

"폐밖에 되지 않죠."

"아뇨, 아니에요. 눈은 어른에게 폐밖에 될지 몰라도 아이에겐 동심이 되어요. 꼭 내려야 해요."

마감에 거의 가까워졌을 무렵, 코즈키와 비비가 나눈 대화였다. 코즈키는 그 대화에서 모성을 느꼈다. 내오는 차처럼 따뜻한 어머니. 그래서 비비와 결혼하면 괜찮은 가정을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비비는 코즈키에 대해 아무런 연정도 목적도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다음 달의 겨울에서 나눈 대화를 보시라.

"이번 달도 눈이 많이 내립니다."

"설국雪国이 될 정도면 더 일찍 문을 닫아야 해요."

"그래도 동심이 지켜지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은 커다란 바위를 굴리듯 눈사람을 만들 텐데요."

비비는 흥미가 돋았다.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남자를 마주하는 것이란 그랬다. 코즈키는 긴밀했고 자신에게 동한 여자의 시선을 잘 알아차렸다. 아마 찻집 문을 닫고 나면 심야 영화를 함께 보러 갈 것이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그 뒤로··· 청혼하려고 했다.

겹겹이 껴입은 코트를 적시는 눈에 통 따스하지 않았다. 코와 귀가 얼어붙을 듯 시렸고 장갑 없이 마주 잡은 두 손은 열기가 온전했지만 조금이라도 놓는 순간, 매서운 겨울바람이 틈을 파고들었다. 코즈키가 말했다. 당신의 차를 더 마시고 올 걸 그랬다고. 비비는 웃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됐을 때 코즈키는 생각했던 것처럼 청혼했다. 비싼 다이아였다. 비비는 한 번도 보석을 본 적이 없어서 대충 비슷한 합성 다이아였어도 정말 예쁘다며 넘어갔을 여자였다. 하지만 청혼 보석은 기꺼이 비싸야 했다. 비비만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코즈키 본인의 자존심이기도 했으니까.

이날도 눈이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박눈을 달고 사는 사이였다. 그래서 당연히 첫아이도 설국이 지켜보는 아래 낳는다 의심 한 번 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시대는 없다고 했던가. 아이러니하게 코즈키 키티는 펄펄 끓는 태양으로 땀이 온몸에 조여드는 팔 월 십칠 일에 태어났다. 그로부터 다섯 해가 지난날, 코즈키는 타인과 완벽한 겨울을 만드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떠났다. 암흑이고 두려움이었던 세상 살기는 온전히 코즈키 코코로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나의 여자와 나의 아이란 무엇이느냐고. 비비는 원망하지 않았다. 코즈키家 코즈키 비비를 지우고 다시 찾은 코이 비비는 여전히 코즈키에게 어떠한 연정도 목적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겨울에 나눈 대화는 다만 치기였다. 치기 때문에 잃은 어떠한 꾸중. 후회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